대간, 정맥/금북정맥(終)

금북정맥 1차산행(이티재-무이산-칠현산-칠장산 분기점

수정신 2013. 7. 14. 23:32

산행일시 : 2013. 07. 13(토)

산행코스및 거리 : 이티재(배티고개)-5-471m봉헬기장)-3.9-옥정현-2.2-무이산-6.4-칠현산-2.3-정맥분기점-1-칠장사주차장. 20.8 km

                        이티재 09:13출 - 칠장사주차장 15:42착

 

지난 주부터 시작된 장마가 일정치 않고 시커멓게 쏫아 붓다가 한 순간 언제 비왔냐는 듯이 햇볕이 바늘로 찌르듯 따갑게 내리쬐는, 변덕스런 날씨가 반복 됩니다.

특이하게도 중부지방은 많은 비가 내리고 남부지방은 폭염에 시달리는 양극으로 갈리는 날씨 입니다.

한 여름 산행하기에 폭염과 폭우 어느 편이 좋을까요? 

엊그제, 그러니까 7.11일... 나는 개인 사정으로 미리 앞당겨 다녀온 호남정맥 제암산 구간을 이 날 다녀온 새마포산악회 정병훈님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찜통 더위에 무척이나 고생을 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범접하기엔 엄청난 산행경력을 지니신 그 분이 산행기에서 힘든 표현을 몇번이나 반복하신 것을 보니 폭염속의 산행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내가 걷고 있는 듯 절절히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번 금북정맥 첫 산행은 중부지방 폭우소식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지난 산행 후 보름만의 산행입니다.

주 1회 정도는 산에 오르던지 집에서 운동을 한다든지 해야 산에서 힘들지 않을텐데 그동안 기름진 안주에 매일 술을 마셔댔더니 보름사이 몸이 7kg이나 불었고 허리도 많이 아픈게 제 컨디션이 아닙니다.

비가 퍼붓는 꼭두새벽에 베낭을 메고 우산을 쓰고 차량 탑승지에 도착하니 여러 산객들이 인도 옆 상가의 처마에 우산을 쓰고 참새떼처럼 올망졸망 서 있습니다.

처마라고는 하지만 한뼘도 안되지만 뒤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은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 틈새로 끼어들어 비를 피할까 했지만 이미 다 차지하고 있어 보도에 그냥 서 있는데 배낭을 메어선지 우산을 앞으로 기울이면 배낭이 젖고 뒤로 기울이니 바닥에서 빗물이 튀어 바짓가랑이가 젖고 신발이 젖어옵니다.

다행이 산악회 버스가 금방 와 주었기 망정이지 산행지 도착도 전에 생쥐꼴 될 뻔 햇습니다.

 

잠시 새우잠 자다 몸의 쏠림이 느껴져 깨어보니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길 입니다.

이동거리가 짧다보니 휴게소 들리기가 뭐 했는지 그냥 들머리로 이동하는데 어? 이거 큰일났습니다.

혼자가면 혼자 가는대로, 산악회 따라가면 각 산악회의 특성에 맞춰 식사와 등산준비등을 하는데... 오늘 가는 산악회에 갈때는... 

아침식사를 겁없이 먹고, 휴게소에 들리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 몸무게를 확 줄이고 목적지로... 이랬었는데 참 난감합니다.

들머리인 이티재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지만 습도가 높아 끈적함이 느껴지는데 속을 비우지 못한 걱정을 하니 배가 더 불러오는 것 같고 숨까지 차네요.

이걸 보고 상상떵마렴증이라 하는가 봅니다. ㅎㅎㅎㅎㅎㅎ

방법은 둘.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내빼거나, 아예 다 올려 보내고 맨 꽁찌로 가는 것...

둘 다 실패하고 처진 선두로 가는데 눈길은 요세를 찾아 주리번 거리는데 조금만 더 가서, 조금만 더 가서... 하다보니 게속 걷게되고 참을만 하더니 어느 순간 앞사람과 벌어지지 않으려고, 뒷사람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땀을 버지기로 쏟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산이 이래서 좋은가 봅니다. 자연 치유가 됩니다. 생체본능까지 치유해 주는... ㅋㅋㅋ

 

원래 맥산행은 동,서,남, 북진이든 분기점에서 시작하든 분기점에서 마치든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이 맞는건지, 의미없는 고집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금북정맥 분기점이나 금북정맥이 바다와 만나는 안흥진리가 아닌 배티재에서 역산행을 합니다.

칠장사 주차장에는 공중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어 땀으로 젖는 여름산행에서 최적의 하산장소 입니다. 

 

아무튼 한여름 날씨에 시원하길 바라는건 너무 터무니 없는 소망이기에 땡볓보다는 우중산행이 낫다고 위안을 하며 목적지 도착하니 비가 그치고 하늘은 구름이 무겁게 덮여 있습니다.

햇볕도 없고 비도 안오고... 뭐 이런 좋은 날씨가 다 있지??... 잠시 감동먹고 산을 오르면서 그게 아니구나 라는걸 깨닫습니다.

높은 기온과 우중중한 산길에서 올라오는 습한 열기에 오늘도 땀으로 범벅을 합니다.

 

금북1구간. 이티재~칠장사.이티재~칠장사

 

 

 

 

 

▲▼ 325번 지방도가 지나는 이티재. (아래글은 그랜드산악회 주동님께서 힘들여 발췌하신 고증을 옮겨 온 것입니다.주동님께 감사 드립니다.)

배티고개(이티재:325번 지방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인 배티고개는 조선시대 반역의 뜻을 품은 신천영(申天永)의 무리와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의 의병이 싸운 고개인데, 신천영이 패하자 그 고개를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티]라 하였고, 음이 변하여 배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은 믿을 수 없고, 배나무와 관련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배티의 ‘배’를 이(梨)의 뜻으로 보고 한자화한 지명이 이티[梨티]이다. 전국적으로 배티 또는 배티가 전부 요소로 쓰인 지명이 더러 발견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배고개·뱃재와 함께 쓰인다. 따라서 배티나 배티고개는 ‘배나무가 있는 고개’로 풀이할 수 있다. 배티마을에 있는 배티고개도 마을 어귀에 돌배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배티나 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나 배티고개는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있는 배티마을은 원래 아랫말·중간말·꼭대기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중간말은 없어졌다. 배티마을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우촌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이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양백리 삼박골, 용덕리 용진골·정삼이골,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명심이,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이월면 신계리 새울,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문백면 구곡리 굴티 등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도 30여 명이 관군에게 학살당한 곳으로 지금은 성역화하여 순례지가 되었다.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隱花)』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 출처:디지털진천문화대전

충청북도 진천군의 백곡면 양백리와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현재 325번 지방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조선 시대 지명은 대문령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 서쪽 35리에 있으니 이곳이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택리지』에서 진천의 위치를 대문령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관아 서쪽 30리에 있으며, 심곡산에서 뻗어 나와 협탄령(脇呑嶺)으로 이어진다."라는 기록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인근에 '백학령(白鶴岺)' 지명이 기재되어 있고, "경기 안성계 월하동 30리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 이티재에서 2km지점. 민가가 한채 있으나 임도 북쪽으로는 막혀 있습니다.

471m 헬기장. 이티재에서 5km지점(gps고도계로는 484m)

지금껏 본 산봉우리 헬기장중에 가장 잘 만들어 놓은 헬기장입니다.

 

 

 

▲▼ 11:11:11. 이티재에서 8.2km

 

 409.9m봉 삼각점에서 약 분 3후에 나오는 헬기장

 

▲옥정현. 11:22:22.... 410봉에서 11분후에 도착함 0.7km거리...

 

 

약간 헷갈리는 곳.... 우측으로 빠지기 쉬운데 좌측능선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 12:46

 

 

 

▲ 덕성산삼거리

 

▲▼ 공림정상 

 

▲ 칠현산(516m)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죽산면에 있는 산으로 산기슭에 칠장사가 있다.

고려 때 혜소국사가 일곱 도적을 제도하여 도를 깨치게 했다 하여 칠현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칠현산에서 15분 진행하면 부부탑.

 칠장산 정맥분기점 갈림길. 분기점왕복 450m에 10여분 소요

 

 

칠장사는 유난히 도둑과 인연이 깊다.

궁예는 열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

경부선이 들어앉은 20세기부터 역사의 외곽으로 밀렸지만 죽산은 장호원 음성 문경새재 문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가려면 여기를 통해야 했다. 돈이 오가는 길목에서 고을은 번성했고 빈부의 양극화도 활발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한 건 한 뒤 한달음으로 달리면 반나절 만에 닿을 법한 거리에 칠장사가 있다.

잠깐 숨을 은신처로는 제격인 셈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7인의 아라한 역시 본래 산적이었다.

사찰을 중수한 혜소(慧炤) 국사의 교화로 도를 깨쳤다.

스님은 고려 제9대 임금 덕종의 왕사(王師)였다.

어느 날 이들의 산채 인근인 칠장사에 스님이 부임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염려한 도둑들은 스님의 동정을 살필 요량으로 한 사람씩 뽑아 칠장사로 올려 보냈다.

절에 당도한 첩자들에게 염탐은 뒷전이었다.

약수터에 놓인 금바가지에 혹해 물을 마시는 척하고는 바가지를 훔쳐 돌아왔다.

이상한 것은 빼돌린 바가지를 아지트에 갖다놓기만 하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도둑 중 한 사람이 이 일을 고백하니 나머지 여섯도 괴이한 현상에 관해 실토했다.

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여긴 패거리는 그 날로 머리를 깎고 국사의 제자가 됐다.

스님이 입적하자 이들도 사람의 형상을 한 7개의 돌만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후문이다.

칠장사(七長寺)와 칠현산(七賢山)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 (주동님 발췌글 펌글)

 

금북1구간. 이티재~칠장사.이티재~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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